트립루트37 환경 컬럼 두 번째 이야기. 부캉이 컬럼에서 바다를 봤다면, 이번에는 우리가 여행길에 지나치는 밭과 과수원을 들여다봤습니다.
10월 강원도 홍천이나 양구로 가는 길, 국도변에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달린 과수원이 보입니다. 사과 하면 대구와 경북을 떠올리던 세대에겐 낯선 풍경이지요.
숫자로 보면 더 분명합니다. 강원도 사과밭은 2009년 199ha였습니다. 2025년에는 1,951ha. 16년 만에 열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전국 사과의 1%도 안 되던 강원 사과가 이제 6% 남짓을 차지합니다.
농촌진흥청은 2025년 강원도 철원에 북부원예시험장을 새로 열었습니다. 과수 재배지가 너무 빨리 북쪽으로 올라오자, 그 변화를 가장 북쪽에서 지켜볼 시험장이 필요해진 겁니다. 시험장 책임자는 요즘 포천과 철원 농민들이 가장 관심을 두는 작물이 사과라고 말합니다.
부캉이 컬럼의 물고기들처럼, 땅 위의 작물들도 이사를 하고 있습니다.
예전 지도, 지금 지도
| 작물 | 예전 | 지금 |
|---|---|---|
| 사과 | 대구·경북 | 강원 재배지 16년 새 열 배 |
| 여름 배추 | 강원 고랭지가 든든한 산지 | 재배 면적 평년보다 17.5% 줄어 |
| 아열대 과수 | 제주가 1위 | 2020년부터 전남이 1위, 80.1% |
| 감귤 | 제주 | 남해안·강원 해안까지 넓어질 전망 |
| 단감 | 남부 지방 | 중부 내륙 전역으로 넓어질 전망 |
바다에서 물고기가 1℃라도 찬물을 찾아 북쪽으로 갔듯이, 밭에서는 작물이 알맞은 온도를 찾아 북쪽으로, 또 산 위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산꼭대기에 있던 작물은 더 올라갈 데가 없습니다.
사과는 겨울에 푹 자야 열립니다
사과와 배는 겨울잠이 필요한 나무입니다. 7℃ 아래에서 1,200~1,500시간을 지나야 봄에 제대로 꽃을 피웁니다. 열매가 익을 무렵 날이 너무 더우면 빛깔도 잘 들지 않습니다. 반대로 감귤과 단감은 추위에 약해서 겨울이 따뜻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따뜻해질수록 사과와 배는 설 자리를 잃고, 감귤과 단감은 땅을 넓힙니다. 농촌진흥청이 2022년 내놓은 미래 과일 지도가 그 흐름을 보여 줍니다.
| 과일 | 농촌진흥청 전망 (온실가스를 줄이지 못할 경우) |
|---|---|
| 사과 | 재배 가능한 땅이 계속 줄어 2070년대엔 강원도 일부에서만 |
| 배 | 2030년대까지 늘다가 2090년대엔 강원도 일부에서만 |
| 복숭아 | 2030년대 이후 급감, 2090년대엔 강원도 산간에서만 |
| 포도 | 2050년대까지 유지, 2070년대엔 고품질 재배지 급감 |
| 단감 | 산간을 뺀 중부 내륙 전역으로 확대 |
| 감귤 | 제주에서 남해안과 강원도 해안까지 확대 |
이 지도는 온실가스를 거의 줄이지 못한 경우를 가정한 것이라,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만 같은 연구에서 이전 전망보다 재배지 이동이 10~20년 더 빨라졌다는 결과가 나왔다는 점은 기억해 둘 만합니다.
올해 사과값은 내렸는데요?
맞습니다. 2026년 사과 생산량은 48만 7,100톤으로 작년보다 8.7% 늘 것으로 전망됐고, 8월 조생종 쓰가루 소매가는 1년 전보다 28.6% 내렸습니다. 「금사과」 소리가 쑥 들어갔지요.
그런데 같은 여름, 경남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졌습니다. 폭염과 가뭄으로 단감 피해 신고가 1,696.7ha, 전국 단감밭의 17.2%에 이르렀습니다. 더워질수록 넓어진다던 단감이 더위에 크게 다친 겁니다.
기후변화는 「조금씩 따뜻해진다」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느 해는 봄이 늦게 춥고, 어느 해는 여름이 지나치게 덥고, 그 들쭉날쭉함이 점점 커지는 쪽에 가깝습니다. 한 해 풍작이 흐름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배추가 산을 떠나는 이유
강원 태백 혈동, 해발 850~1,000m의 비탈 밭. 35년째 여름 배추를 키워 온 농민은 올해 6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몇 년 뒤엔 나도 배추 농사 접어야지.」
배추가 잘 크는 온도는 17~23℃이고, 30℃를 넘으면 자라기를 멈춥니다. 여름 배추를 해발 높은 고랭지에서 키우는 까닭입니다. 그런데 작년 이맘때 태백 기온이 33~34℃까지 올랐습니다. 5~6년 전만 해도 여름밤이 24~25℃ 아래였던 곳에서, 이제는 밤에도 더운 날이 며칠씩 이어집니다.
더우면 병과 벌레가 늘고, 약값과 품삯이 따라 오릅니다. 여름 배추 출하율은 70% 안팎에서 최근 1~2년 사이 50%대로 떨어졌습니다. 2026년 여름 배추를 심겠다는 면적은 3,343ha로 작년보다 6.6%, 평년보다 17.5% 줄었습니다.
떠난 농가들은 더위에 강한 양배추나 땅속에서 크는 감자로 옮겨 갔습니다. 올해 고랭지 감자 면적은 5.7%, 여름 양배추는 평년보다 14.1% 늘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감자와 양배추 값이 떨어졌습니다. 기후가 흔든 밭은 한 품목에서 끝나지 않고 옆 품목까지 흔듭니다.
제주 대신 전남, 감귤 옆에 망고
남쪽 끝에서는 반대 풍경이 펼쳐집니다. 2025년 국내에서 아열대 과수를 키우는 농가는 3,387곳, 면적은 1,198.6ha로 여의도의 4.1배입니다. 2023년보다 농가는 24.2%, 면적은 10.3% 늘었습니다.
눈여겨볼 건 장소입니다. 2019년까지는 제주가 1위였는데, 2020년부터 전남이 앞질렀습니다. 지금은 전남이 80.1%, 제주는 9.6%입니다. 감귤류를 빼고 보면 무화과가 792.5ha로 가장 넓고, 망고 138ha, 석류 98.6ha가 뒤를 잇습니다.
농가가 늘어난 데는 값도 한몫합니다. 애플망고는 kg당 2만 7,000원으로, 시설 감귤(4,800원)의 다섯 배가 넘습니다. 다만 대부분 겨울 난방이 필요한 시설 재배라 연료비를 함께 따져야 합니다.
농촌진흥청 전망대로라면 지금 국토의 6.3%인 아열대 기후대는 2030년대 18.2%, 2050년대 55.9%까지 넓어질 수 있습니다. 2050년대엔 나라 땅 절반이 넘게 「아열대」가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날씨에 덜 기대는 농사, 스마트팜
그렇다면 농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정부가 꺼낸 답 가운데 하나가 스마트팜입니다. 2029년까지 전국 온실 약 5만 5,000ha의 35%를 스마트팜으로 바꾸고, 배추·사과 같은 주요 밭작물 주산지의 20%에 스마트농업 기술을 쓰겠다는 계획입니다. 지원 대상에는 수직농장도 새로 들어갔습니다.
스마트팜은 온도와 습도, 빛과 물을 센서로 재고 맞춰 줍니다. 바깥이 34℃여도 안은 배추가 좋아하는 20℃ 언저리로 지킬 수 있고, 장마가 길어도 햇빛 대신 조명을 켤 수 있습니다. 하늘만 바라보던 농사를 조금은 사람 손으로 가져오는 셈이지요.
물론 만능은 아닙니다. 온도를 맞추는 데 에너지가 들고, 그 에너지를 어디서 얻느냐에 따라 또 다른 온실가스가 나옵니다. 정부 계획에 에너지 효율과 온실가스 감축 연구가 함께 들어간 이유입니다.
트립루트37을 만드는 2025after도 스마트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숫자들이 남의 일처럼 읽히지 않습니다. 날씨가 흔들어도 식탁은 덜 흔들리게, 그러면서 에너지는 덜 쓰는 농사. 그게 우리가 붙잡고 있는 숙제입니다.
한눈에 보는 땅 위의 이사 기록
| 항목 | 예전 | 지금 |
|---|---|---|
| 강원 사과 재배지 | 199ha (2009) | 1,951ha (2025) |
| 전국 사과 중 강원 비중 | 1% 미만 (2009) | 약 6% (2025) |
| 여름 배추 재배 의향 면적 | 평년 | 3,343ha, 평년보다 17.5% 감소 (2026) |
| 여름 배추 출하율 (태백) | 70% 안팎 | 50%대 |
| 아열대 과수 농가 | 2,726곳 (2023) | 3,387곳 (2025) |
| 아열대 과수 1위 지역 | 제주 (2019년까지) | 전남 80.1% (2025) |
| 국토 중 아열대 기후대 | 6.3% (현재) | 55.9% (2050년대 전망) |
여행길에서, 장바구니에서
다음에 강원도로 단풍 여행을 간다면 국도변 사과밭을 한 번 눈여겨보세요. 그 사과밭이 거기 있는 이유가 이 컬럼의 첫 문장입니다. 여름에 태백이나 강릉 안반데기 고랭지를 지난다면, 산비탈을 덮은 배추밭이 언제까지 그 자리에 있을지도 한번 생각해 보시고요.
장바구니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있습니다. 빛깔이 조금 덜 고운 사과를 골라 보는 것. 더운 가을이 남긴 흔적이 바로 그 빛깔이고, 그런 사과가 팔리지 않으면 고스란히 버려집니다. 제철에, 가까운 산지에서 난 것을 먼저 집는 것. 다 먹지 못할 만큼은 사지 않는 것.
부캉이 컬럼을 「나라도 바뀌어야지」로 맺었습니다. 땅 이야기도 같은 자리에서 끝납니다. 2025after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인류가 조금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인류와 지구를 동시에 이롭게 한다.」 사과 한 알을 고르는 손에서 시작해 보려 합니다.
출처
- 농촌진흥청 보도자료 (2022-04-14) 「온난화」로 미래 과일 재배 지도 바뀐다
- 머니투데이 (2025-09-27) 2025 한반도 기후변화 리포트 — 강원 사과 재배 면적(통계청)
- 농민신문 (2026-06-27) 「이상고온 더는 못 버텨」 배추농가 작목전환 가속화 — 한국농촌경제연구원 6월 엽근채소 관측·7월 감자 관측 인용
- 헤럴드경제 (2026-08) 폭염에도 올해 사과 8.7% 더 나온다 — 농림축산식품부 2026년산 주요 과일류 수급 동향 인용
- 네이트 뉴스 (2026-02-15) 아열대 과수 재배 농가 24% 증가 — 농촌진흥청 자료 인용
- 한국농기계신문 (2025-02-18) 2029년까지 온실 35% 스마트팜으로 전환 — 농림축산식품부 제1차 스마트농업 육성 기본계획
조사 기준일 2026년 10월 8일. 숫자는 농촌진흥청·농림축산식품부·통계청 자료와 이를 인용한 보도에서 확인한 것만 썼습니다. 미래 전망은 온실가스 고배출 시나리오(SSP5-8.5)를 가정한 값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