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1일 일요일 아침, 서울 도심을 달리던 하프마라톤에서 20대 참가자가 결승선을 500m쯤 앞두고 쓰러졌습니다. 대회 요원이 바로 심폐소생술을 하고 119로 병원에 옮겼지만 끝내 숨졌습니다. 원인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이 글은 그 원인을 짐작하려는 글이 아닙니다. 다만 같은 출발선에 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오래 즐기려면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정리해 두고 싶었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나라
우리는 뭘 하든 끝을 봅니다. 10km를 뛰면 하프를, 하프를 뛰면 풀코스를, 풀코스를 뛰면 철인 3종을 바라봅니다. 산에 가면 정상석 앞에서 사진을 찍어야 다녀온 것 같고, 기록 앱에 찍힌 숫자가 지난주보다 나빠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합니다. 이 성실함이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왔지만, 몸 앞에서는 성실함이 독이 되는 날도 있습니다.
러닝 붐은 숫자로 보면 더 실감 납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자료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국내 마라톤 대회는 2020년 19개에서 2024년 254개로 늘었고, 참가자는 같은 기간 9,030명에서 1,008,122명으로 처음 100만 명을 넘었습니다. 2020년 1월부터 2025년 9월까지 참가자 1천 명이 넘는 대회 507개에서 사고가 179건 났고, 2024년 한 해에만 72건이었습니다.
10월 13일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황영조 감독은 사고의 원인으로 기록, 순위, 욕심, 무리한 레이스를 꼽았습니다. 잠이 모자라고 일에 지친 채 연습 없이 대회에 나가는 것, 그리고 러닝 열풍과 함께 퍼진 SNS 과시 문화도 걱정했습니다. 그가 남긴 한마디가 이 글의 결론과 같습니다.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이 잘 뛰는 사람이다.”
사고는 마지막 구간에 몰립니다
먼저 겁부터 줄 생각은 없습니다. 마라톤은 생각보다 안전한 운동입니다. 미국에서 2010년부터 2023년까지 마라톤과 하프마라톤 완주자 2,931만 명을 추적한 연구(RACER, 2025)에서 심정지는 176건, 10만 명당 0.6건이었습니다. 심정지가 일어난 사람 가운데 숨진 비율은 2000년대 71%에서 34%로 크게 줄었습니다. 현장에서 바로 심폐소생술을 하고 자동심장충격기(AED)를 빨리 쓴 덕분으로 봅니다.
눈여겨볼 것은 언제 일어나느냐입니다. 같은 연구에서 심정지는 대부분 레이스 마지막 4분의 1 구간에서 일어났습니다. 1976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 마라토너 171만 명을 본 학회 발표에서도 심정지의 53%가 37km 이후에 나왔습니다. 지친 몸으로 마지막에 속도를 끌어올리는 그 구간이 가장 위험하다는 뜻입니다. 같은 발표에서 AED로 처치받은 사람은 85%가 살았고, 받지 못한 사람은 25%만 살았습니다.
⚠️ 결승선이 보이면 속도를 올리지 마십시오. 막판 스퍼트를 하지 말라는 공식 권고나 연구는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심정지가 레이스 후반에 몰린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에서 확인됩니다. 기록 몇 초는 다음 대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1km는 평소 속도 그대로, 표정이 편한 채로 들어오십시오.
철인 3종은 물에서 무너집니다
철인 3종은 마라톤보다 위험이 큽니다. 미국 철인 3종 참가자 477만 명을 30년 넘게 본 연구(Annals of Internal Medicine, 2017)에서 사망 또는 심정지는 10만 명당 1.74건이었습니다. 60세 이상 남성은 10만 명당 18.6건으로 훨씬 높았습니다. 돌연사와 심정지 120건 가운데 90건, 넷 중 셋이 수영 구간에서 일어났습니다. 숨진 사람을 부검한 61건 가운데 27건에서 의미 있는 심장·혈관 이상이 발견됐습니다.
출발 신호와 함께 수백 명이 한꺼번에 물에 뛰어드는 순간, 차가운 물과 남의 발길질, 숨 막히는 긴장이 한꺼번에 덮칩니다. 수영장에서 1.5km를 편하게 가는 사람도 바다에서는 전혀 다른 몸이 됩니다. 그래서 철인 3종을 준비한다면 자전거 값보다 바다 수영 연습에 먼저 시간을 쓰십시오. 숨이 가쁘면 출발을 늦게 하고 가장자리에서 시작해도 됩니다. 물에서 무리하지 않는 것이 철인 3종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입니다.
등산은 정상보다 하산입니다
지금이 산에서 사고가 가장 많은 때입니다. 소방청 집계를 보면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산악사고 구조 출동은 30,583건이었고, 그중 10월이 3,792건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원인은 발을 헛디디거나 떨어진 사고가 32.1%, 길을 잃은 조난이 29.3%, 심장 이상 같은 개인 질환이 10.3%였습니다. 국립공원에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숨진 사람의 원인도 심장 돌연사가 32명으로 추락사 30명보다 많았습니다.
실족과 조난은 대개 지쳤을 때, 그리고 해가 질 때 일어납니다. 정상까지 가겠다고 시간을 다 쓰고 나면 내려올 힘과 빛이 남지 않습니다. 산림청 산행 안전수칙의 마지막 글자 D는 Descent, 해 지기 전에 내려오라는 뜻입니다. 산에 들어가기 전에 몇 시가 되면 어디에 있든 돌아선다는 시각을 정하고, 그 시각이 되면 정상을 코앞에 두고도 돌아서십시오. 정상은 다음에 또 있지만 하산은 오늘 반드시 해야 합니다.
장비는 몸을 대신 달려 주지 않습니다
요즘 러닝 동호회에 처음 나가면 신발부터 다릅니다. 카본 판을 넣은 레이싱화, 심박과 페이스를 재는 시계, 압박 양말과 기능성 조끼까지 갖추고 첫 10km를 뜁니다. 산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네 뒷산에 히말라야 원정대 같은 차림으로 오르고, 철인 3종을 시작하자마자 값비싼 자전거부터 들입니다. 장비를 사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문제는 좋은 장비를 사면 그 장비에 걸맞게 뛰어야 할 것 같다는 마음입니다. 장비가 몸보다 먼저 가면 몸은 따라가느라 무리를 합니다.
카본화가 대표적입니다. 황영조 감독의 “선수가 아닌 일반인은 가급적 카본화는 신지 말라”는 말은 러너들 사이에 ‘카본화 단속반’이라는 놀이까지 만들었습니다. 스포츠의학계의 설명도 비슷합니다. 신발이 반발력을 높이고 자세를 이끌어 주니 기록은 좋아지지만, 발과 종아리 근력이 따라오지 못하면 그만큼 부상 위험이 커진다는 것입니다. 2023년 국제 학술지 Sports Medicine에는 카본화만 신고 훈련하던 엘리트 선수 5명에게 발의 주상골(발배뼈) 피로골절이 생긴 사례가 실렸습니다. 저자들은 카본화와 부상의 인과관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면서도, 신발을 바꿀 때는 천천히 익숙해지고 평소 신발과 번갈아 신으라고 권했습니다. 훈련량이 많은 엘리트도 이런데, 이제 막 달리기 시작한 몸은 더 조심해야 합니다.
처음 달린다면 발을 억지로 바로잡지 않고 충격만 줄여 주는 평범한 쿠션화로 충분합니다. 같은 기사에서 전문가들은 일주일에 세 번, 한 번에 40분씩 적어도 6개월은 달린 뒤에 인터벌 같은 고강도 훈련으로 넘어가라고 권했습니다. 카본화는 그 뒤 기록에 도전하는 대회 날에만 꺼내 신어도 늦지 않습니다.
시계도 그렇습니다. 숫자는 몸 상태를 알려 주는 도구일 뿐, 따라가야 할 목표가 아닙니다. 지난주 기록보다 느리다는 숫자보다, 숨이 평소보다 가쁘고 가슴이 묵직하다는 몸의 신호를 먼저 믿으십시오. 산에서는 비싼 겉옷 한 벌보다 산림청이 꼽은 기본 세 가지, 발목을 잡아 주는 등산화와 구급용품, 해가 지면 꺼내 입을 방한복이 먼저입니다. 철인 3종 웻슈트는 대회 날 처음 입지 말고, 미리 그 옷을 입고 바다나 호수에서 헤엄쳐 보십시오.
💡 장비를 사기 전에 물어볼 세 가지. 이 장비 없이 지금 나는 즐겁게 운동하고 있는가. 이 장비를 사면 내가 더 빨리, 더 멀리 가고 싶어지지 않을까. 같은 돈으로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거나 정밀 검진을 받는 편이 낫지 않은가.
즐기면서 건강하게 하는 기준
필진이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마라톤, 철인 3종, 등산에 두루 쓸 수 있는 기준을 정리했습니다. 대단한 비결은 없습니다. 멈춰야 할 때를 미리 정해 두는 것이 전부입니다.
- 이런 증상이 있으면 출발선에 서지 마십시오. 운동할 때 가슴·목·턱·팔이 답답하거나, 가벼운 운동에도 숨이 차거나, 어지럽거나 정신이 아득해진 적이 있거나, 이유 없이 가슴이 두근거린다면 운동을 멈추고 먼저 진료를 받으십시오. 미국스포츠의학회(ACSM)가 운동 전 진료를 권하는 신호들입니다.
- 열이 나면 쉽니다. 콧물이나 가벼운 목 아픔처럼 증상이 목 위에만 있으면 강도를 낮춰 운동해도 대체로 괜찮습니다. 하지만 열, 온몸 근육통, 깊은 기침, 심한 피로가 있으면 대회 참가비가 아까워도 쉬는 날입니다.
- 잠을 못 잤으면 목표를 내려놓습니다. 전날 밤을 새웠거나 일로 지쳐 있다면 그날은 완주만, 아니면 중간에 걷는 것을 목표로 바꾸십시오.
- 거리는 천천히 늘립니다. 흔히 말하는 ‘주당 10% 규칙’은 근거가 약합니다. 다만 초보 러너 874명을 본 덴마크 연구는 2주 사이 주간 거리를 30% 넘게 늘리지 말자고 제안했습니다. 첫 하프, 첫 풀코스는 서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 목마를 때 마십니다. 급수대마다 억지로 물을 많이 마시면 피 속 나트륨이 묽어지는 저나트륨혈증이 올 수 있습니다. 국제 합의 권고는 ‘목마를 때 마시기’입니다.
- 더운 날은 기록을 버립니다. 미국스포츠의학회는 더위 지수(WBGT)가 23~28℃면 위험군은 기권하고 나머지는 속도를 줄이라고, 28℃를 넘으면 대회 취소나 기권을 권합니다.
- 마지막 구간은 속도를 올리지 않습니다. 결승선 사진보다 결승선 뒤의 저녁 식사가 더 중요합니다.
- 산에서는 돌아설 시각을 먼저 정합니다. 해 지기 전에 내려오는 것을 기준으로, 출발 전에 돌아설 시각을 정하고 지킵니다.
- 나이가 들수록 검진을 먼저 받습니다. 철인 3종 사고는 60세 이상 남성에게서 유난히 많았습니다. 처음 장거리에 도전하거나 강도를 크게 올리려 한다면, 특히 심장 질환이나 그 위험이 있다면 의사와 먼저 상의하십시오.
- 심폐소생술과 AED를 배워 둡니다. 마라톤 심정지 생존율을 끌어올린 것은 결국 옆에 있던 사람의 손이었습니다. 내가 쓰러질 수도 있지만, 내가 옆 사람을 살릴 수도 있습니다.
- 대회도 골라서 나갑니다. 서울시는 올해 1월 하프마라톤에 구급차 12대 이상, 10km 대회에 6대 이상을 두라는 운영 기준을 냈습니다. 참가 신청 전에 의료 인력과 구급차, AED 배치 안내가 있는지 보십시오. 국민체육진흥법은 참가자 1천 명 이상 행사에 안전관리계획을 세우게 하지만, 제출 의무와 처벌 조항은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오래 즐기는 사람이 이깁니다
달리기와 등산은 평생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운동입니다. 오늘 기록을 하나 줄이고, 오늘 정상을 하나 미루는 대신 10년 뒤에도 같은 길을 걷고 뛸 수 있다면 그쪽이 훨씬 큰 기록입니다. 가을 대회와 단풍 산행이 이어지는 계절입니다. 출발선과 들머리에서 오늘 내가 멈출 곳을 먼저 정하고 떠나십시오. 다시 한 번, 서울 도심에서 달리다 떠난 참가자의 명복을 빕니다.
참고한 자료
- 데일리안 — 서울레이스 하프코스 참가자 사망 (2026.10.13)
- 서울신문 — 잇따르는 마라톤 사고, 황영조 “기록 욕심이 문제” (2026.10.13)
- 서울신문 — ‘묻지마 카본화’에 발병 납니다, 초보 러너는 중립 쿠션화 (2026.7.24)
- 서울경제 — 마라톤 대회·참가자 증가와 사고 집계 (2025.10.10)
- TCTMD — RACER 연구: 마라톤 심정지 빈도는 그대로, 생존율은 상승 (2025)
- 미국심장학회(ACC) — RACER 연구 요약 (2025)
- MDedge — 마라톤 심정지는 결승선 근처에 몰린다 (DuPrey 외 학회 발표)
- 미국심장학회(ACC) — 미국 철인 3종 참가자의 사망과 심정지 1985~2016 (2017)
- 경향신문 — 소방청 산악사고 구조 통계 (2026.10.12)
- 의학신문 — 국립공원 사망 원인 (2023.9.11)
- 이투데이 — 산림청 산행 안전수칙 NEED (2026.2.24)
- Live Science — 카본화와 피로골절 사례 연구 (Sports Medicine, 2023)
- 미국스포츠의학회 운동 전 검진 권고 (Riebe 외, 2015)
- 메이요 클리닉 — 감기에 걸렸을 때 운동해도 될까
- Nielsen 외 — 주간 달리기 거리 급증과 부상 위험 (JOSPT, 2014)
- ScienceDaily — 운동 관련 저나트륨혈증 국제 합의: 목마를 때 마시기 (2015)
- 미국스포츠의학회 더위 안전 기준 (WBGT 깃발 체계)
- 코리아중앙데일리 — 서울시 마라톤 운영 가이드라인 (2026.1)
- 시사저널 — 마라톤 대회 안전관리 제도 기고 (2026.10.7)
조사 기준일 2026년 10월 13일. 이 글은 공개된 연구와 보도를 바탕으로 쓴 칼럼이며 의학적 진단이나 처방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몸에 이상이 느껴지면 운동을 멈추고 전문의와 상의하십시오. 서울 대회 사고의 원인은 발표되지 않았으며, 이 글은 그 원인을 다루지 않습니다. 해외 연구 수치는 원문을 요약한 의학 매체 보도를 기준으로 옮겼습니다.
